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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주화파 최명길VS척화파 김상헌… 가슴 먹먹한 설전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10-26 08:55:32
  • 조회수 : 72

[백세시대]

   
▲ 병자호란 당시 47일간 남한산성에 갇혀 조선의 운명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인조와 신하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번 작품은 주화파 최명길을 연기한 이병헌(왼쪽)과 척화파 김상헌으로 분한 김윤석(오른쪽)의 연기대결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김훈 원작… 청 침략에 쫓겨 고립무원 된 인조와 신하들의 고뇌 그려
이병헌‧김윤석 연기대결도 불꽃… 시국과 맞물려 관객들 관심 모아

“400여년전 조선과 현재 대한민국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네요.”
지난 10월 13일, 서울 강북구의 한 영화관에서 만난 이영익(72)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한산성’을 관람한 그는 조선에서 벌어진 치욕적인 사건을 보면서 북핵 문제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려했다. 이 어르신은 “영화 속 척화파나 주화파나 백성을 걱정했던 건 마찬가지”라면서 “작품의 결말과는 달리 현 정부가 슬기롭게 이 위기를 극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스크린으로 옮겨져 350만명을 동원하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작품은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으로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에서 조선의 운명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인조와 신하들의 47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던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가 왕으로 즉위하자 후금은 1627년 광해군의 복수와 형제 관계를 요구하며 ‘정묘호란’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조선은 어쩔수 없이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명나라를 무너뜨린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신하로서 예를 갖추라고 요구하면서 일이 커진다. 조선의 조정은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와 적당히 타협하자는 주화파로 나뉘고 척화파의 주장이 우세해지면서 청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화가 난 청이 군대를 이끌고 다시 침입한 것이 ‘병자호란’이다.

이후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삼전도비(三田渡碑) 등으로 이어지는 치욕적인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과정까지 이르는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았다. 작품은 이점에 집중한다. 당시 조정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상상력을 덧대 역사의 현장을 되살렸다.

청의 대군이 조선을 공격해오자 임금과 대신들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과 청의 치욕스러운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분)은 대립한다.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 분)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거세진다.

영화 후반 병사들이 펼치는 북문전투 신도 인상적이지만 주된 관람 포인트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팽팽한 설전이다. 두 사람이 주장하는 건 ‘살아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죽어서 살 것인가’다. 당장은 수치스럽지만 목숨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대의를 다 하고 목숨을 버릴 것이냐의 문제다.

최명길은 조선의 역적으로 길이 남을 운명을 자처하고, 김상헌은 지금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서로 완벽한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펴나가고 작품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심지어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말싸움은 장수들의 칼싸움을 보는 것만큼이나 격렬하게 진행된다.

최명길과 김상헌을 연기한 이병헌과 김윤석은 무릎을 꿇고 앉아 대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영화답게 만든다. 이병헌은 사극에 최적화된 음성과 발성으로 최명길의 냉철한 논리 전개를 열연한다. 김윤석 역시 저음이 인상적인 특유의 말투를 고수하며 자신만의 연기를 펼친다.

두 사람은 상반된 주장을 펴면서도 적대시하지 않는다. 의견은 다르지만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진심을 존중한다. 여기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 있다. 영화는 어느 한쪽의 의견만을 지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주장은 방법의 차이일 뿐 모두 충정(忠情)과 애민(愛民)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 최악의 왕으로 꼽히는 인조에 대한 묘사도 가감이 없다. 소설에서도 김훈 작가는 인조의 묘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 영화 역시 ‘무능한 왕’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 미화 없이 고뇌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박해일은 절제된 연기로 인물이 처한 혼란과 두려움을 표현해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삼전도의 굴욕’ 장면이다. 인조가 청 태종에게 행한 삼배구고두례(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인사법)는 수많은 드라마가 이마에 피를 흘렸다는 야사를 선택한 것과 달리 영화는 정사를 담았다. 고개를 숙이는 인조의 뒷모습을 걸친 채 높은 제단 위에 앉아있는 청황제를 로 앵글(카메라가 피사체보다 낮은 데 위치해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느낌을 주는 구도, Low angle)로 잡아 치욕의 순간을 시각적으로도 비참하게 묘사했다.

눈 덮인 산과 차가운 성벽,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병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패배의 무게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이런 날것의 이미지에 음악감독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선율이 더해져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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